오늘은 아니고 며칠 전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있던 일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와서 두꺼운 책을 펼쳐놓고 앉았다. 여자가 남자한테 의료민영화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개념부터 문제가 되는 이유 등을 열심히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여자애가 남자애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한 것 같은 느낌. 어쨌든 나도 여자애의 설명을 엿들으면서 의료민영화에 대해 조금 알 수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커피숍에서 일을 하다보면 재미있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친구랑 수다를 떨러가는 게 아니라 혼자 일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것 같다. 23살짜리 여자아이들의 나이들었다는 푸념도 들어봤고, 연인이 되기 직전의 남녀가 서로 손 좀 잡아 보려고 말같지도 않은 핑계를 댈 때는 내가 그냥 억지로 뽀뽀라도 시켜버리고 싶었다. 맞은 편 테이블에서는 참하게 생긴 여자가 알바생 면접을 보고 있다. 방금 나간 한 아줌마 무리는 해외봉사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아줌마들의 수다는 정말 많이 들어봤지만 해외봉사 얘기는 처음 들어봤다. 캄보디아에 신발을 보내는 얘기도 했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서 신발을 안 신고 다니는 아이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귀가 솔깃했다. 소위 말하는 '대치동 아줌마'들의 수다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물론 아이들 교육 얘기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고 유쾌한 아줌마들도 많다. 가끔 미대입시 얘기가 나오면 내 귀가 두 배로 커진다. 국민대 얘기까지 나오면 확 끼어들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tbs 쓸 때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있다.
이럴 때면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티를 내지 않고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해놓고 아무 관심도 없는 척을 하면서 귀를 기울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소리를 듣는 방향으로 귀가 돌아가거나 집중하는 만큼 귀 크기가 커진다면 이런 일은 꿈도 못 꿀 거다. 커피숍에서의 사람들 관찰은 혼자 일하면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다.